top of page
작성자 사진오존O3OHN

선잠 자는 모양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쓴다. 공책에 먼저 쓰고, 컴퓨터로 옮겨 적었다. 팬 돌아가는 소리가 없으니 뭔가 더 편안하다. 그다지 경쾌한 잠은 아니었지만 눈이 떠져서 그냥 일어났다. 이제 슬슬 낮이 뜨거운 날씨가 되어간다. '벌써?'라는 생각을 끊어내고 지금 내 기분에 집중하기로 한다.


꿈에서 본 친한 형의 슬픈 눈이 떠오른다. 그 형은 항상 표정이 슬퍼 보인다. 슬퍼서 슬픈 게 아니라 우수에 찬.. 뭔가 사연 있어 보이는 슬픈 눈.. 무슨 꿈이었는진 기억 안 나고 그 눈만 기억에 남았다. 연락해 볼까? 하다 말았다. 심하게 걱정되는 꿈이 아니면 주로 연락을 남기진 않는다. 다들 친구들에게 연락 자주 하며 사시는지요..? 요즘엔 자주 연락 나누며 사는 게 좋은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잘 못함) 그래도 디엠 덕분에 가벼운 안부 묻기 좋은 시대가 되었다. 가벼운 연락뿐일지라도 가끔은 그런 식의 안부가 누군가의 순간을 장식할 수 있어서 좋다.


군대에 있을 때 자주 하던 건데, 눈 뜨고 일어나자마자 책상에 앉아서 공책에 생각나는 단어를 죽 적어놓고 멍을 때린다. 맘에 드는 단어를 골라 뭔가를 적거나 아님 그냥 쭉- 멍을 때린다. 행정병이었던지라 내 책상이 있었던 건 참 좋았다. 그때 자주 읽던 시집이 지금 옆에 있다. 김행숙 시인의 타인의 의미라는 시집 읽어 보셨나요.. 세어보니 산지 10년이 넘었네.. 어제 오랜만에 꺼내 읽다가 속지가 왜 이렇게 누레졌지..? 했는데 종이책이 이 정도 지나면 노래지는 걸 처음 느껴봤다. 내가 산 책이 그동안 잘 익은 걸 보니 빈티지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뭔가 뿌듯하다. 그간 이 시집을 먹어온 나도 잘 익었을까..


아 참, 그래서 오늘의 단어는


시니컬 농부 - 조각 모음 - 상형 문자 - 선잠 자는 모양 - 도다리 - 파래김 - 세모입 - 호롱불 - 소나기


의식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 몇 있다. 도다리 - 파래김으로 이어지는 해산물 시리즈. 상형 문자 즈음에서 떠올린 것 같은데, 세 글자 단어를 떠올려보자! 하며 갑자기 떠오른 전혀 상관없는 선잠 자는 모양. 시니컬 농부는 뭔지 잘 모르겠다. 시니컬한 (표정의) 농부를 쓰려다 시니컬 농부가 입에 잘 감겨서 그렇게 적은 것 같다. 요새 우베 로젠버그라는 작가의 게임을 자주 찾아보는데, 그의 게임에 항상 등장하는 농부 이미지를 너무 많이 보다 보니 먼저 떠오른 듯.

조각 모음과 상형 문자도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 뭔가 각진 느낌 + 조각들이 모아져 의미가 생긴다는 그런 느낌. 이렇게 들여다보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정신 감정하는 느낌..


이 놀이의 가장 중요한 점은 갓 구워진 빵처럼 아주 뜨거운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다. 일어나자마자 바로 하는 게 가장 좋다. 외부 자극을 최대한 적게 받은 상태의 신선한 두뇌! 할 수 있으면 시간도 확인하지 않는 게 좋다. 하루를 내가 모은 단어들로 시작하는 기분, 뭔가 만들어 낸 기분이 생각보다 후련하다. 어렵지 않으니 내일 한 번 해보시길 바랍니다..

댓글 5개

5 commenti


야굴
야굴
06 giu

귀여운데요 부지런한데요 좋은데요

Mi piace

와 일어나자마자 바로라니 .. 오븐에서 갓 나온 머리가 잘 돌아갈진 모르겠지만 한번 해볼게요 재밌어 보여요 ㅎㅎㅎ 근데 이 글 자체도 엄청 생각의 흐름이네요 ㅋㅋ 좋아요 이런 요리조리 이야기들 남의 머릿속을 막 돌아다녀본 기분🏃‍♀️🏃‍♀️

Mi piace

혜원
혜원
02 giu

아침에 생생한 단어들 적어보는 습관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시를 좋아하시는게 눈에 보이고 마음이 물렁해지네요. 추천해주신 시집도 기회 되면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감히 질문하건대 요즘 문학과 영화, 음악 중에서 가장 아끼는 예술은 무엇이신가요? (물론 고르기 어렵긴 하지만요..) 그리고 작품 또는 노래도 추천해주시면 아주 매우 감사드리겠습니다!

Mi piace
Risposta a

저는 항상 음악에 더 애착이 간다는.. 집착이에요..

Mi piace

Ganzfeld
Ganzfeld
02 giu

이렇게 글씨로 남겨보는 아침 루틴 아주 좋아보이네 나도 해봐야지

Mi piace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