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거짓말

가만히 있다가도 느닷없이 찾아와 쿡쿡 찌르는 거짓말들이 있다. 몇 년 전에 누군가랑 처음으로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단 둘이서는 아니고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보는 자리였다. 오며 가며 짧게 마주친 적은 있었지만 제대로 된 술자리는 처음이었다. 긴장 + 잘 보이고 싶은 마음(세 보이고 싶었을지도)에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했다. 내 성격이 '남한테 영향을 전혀 안 받는 편'이라는 소리를 해놓고 뻔뻔하게 술자리를 이어갔다. 그분은 아직 그 얘기를 기억할지 모르겠다. 이후에 이런저런 모습을 몇 번 더 봤을 테니 그게 거짓말이라는 것도 눈치챘겠지..


아침에(라고 쓰지만 보통 이른 점심즈음 일어남) 가만히 앉아있다가 갑자기 저 거짓말이 떠올랐다. 사실 나는 누구보다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인데.. 아침에 걸려온 스팸 전화 한 통이면 하루를 통째로 꼬인 기분으로 보낼 수 있다. 마음이 잘 맞지 않는 사람과 보낸 몇 시간이 다음 며칠을 어수선하게 만든다. 몇 년 전에 했던 거짓말에 좀이 쑤셔 이제와 끄적이는 걸 봐도 그렇다. 더 적으면 소인배인 게 너무 들통날까 봐 이만해야지..


물론 좋은 점도 많다. 좋은 음악, 공연, 영화, 책, 게임, 사람, 여행, 음식 등을 접하면 꽤 오래 사로잡혀있다. 온전한 내 경험이 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생각한다. 특히 요즘은 좋은 사람과 보낸 시간에서 얻는 에너지가 가장 크다는 걸 느낀다. 그렇다고 사람을 자주 만나진 않는다.. 어렵지만 가장 소중한 일이다. 아 얼마 전에 본 <하츠코이>라는 작품이 정말 좋아서 꼭 다음 겨울에는 홋카이도에 가기로 결심했다.(사실 다음 날 바로 가고 싶었으나 그러면 너무 비싸..) 왜 갑자기 이 얘기를 하냐면 이게 가장 최근에 영향받은 작품이기 때문.. 이런 것들은 싹 모아서 가끔씩 적어두어야겠다.


데이빗 린치가 말하길 창작을 위해서는 최소 세 시간의 고요함이 필요하다고 했다. 내 물건이 없는 공간에서 작업을 하는 것도(여행이 대체로 그런 기분일까나) 도움이 된다고 현우가 말해줬다. 생각이 방해받지 않고 편안하게 흐르도록 들이는 노력. 어쩔 수 없이 들어온 생각은 털어내는 게 정말 어렵다. 털어낼 수 없다면 어떻게 잘 안고 살아가야 할까. 오늘은 부디 좋은 영향만 가득한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까치 이야기

뻐근한 아침을 몰아내려 거실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전선줄 위에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호기심이 많은 까치였다. 한참을 같은 자리에 앉아 집 안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자세히 보니 오동통하고 덩치가 크고 제법 귀엽게...

 
 
 
고성

여행이 끝나면 여독이라는 말을 쓴다. 여기에 쓰인 독이라는 글자가 신경 쓰여 찾아보니 해로운 독이 맞았다. 무해하고 아름답고 환상적일 것만 같은 여행에 꼭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여독. 기억 저편에 잊혀 있다가 여행이 끝나갈 때 즈음 귀신같이 기어...

 
 
 

1 Comment


yuyu1010
Jan 24, 2024

털어낼 수 없는 것이 결국엔 진실과 고요함으로 이어지는 아주 편안한 생각흐름을 느꼈습니다 🙃

Like
bottom of page